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2024년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는 너무 많은 눈이 내렸고요. 계신 곳에서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영국 출장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 리더들을 훈련하는 모임이었는데 이번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여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훈련 장소가 있는 영국 남부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더니 그 지역에 잘 오지 않는 눈이 내렸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리더들이 동영상을 찍으며 즐거워 하면서도 추운 날씨는 힘들어 하였습니다.
한 명이 옷을 좀 두툼하게 입은 것 같아 '옷을 몇 개나 입었나요?'라고 물었더니 자그만치 두툼한 옷을 5개나 껴입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춥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달랑 하나입은 셔츠를 들추어 배를 보여주며 함께 깔깔 웃었습니다. 옷을 많이 껴입은 그 형제가 나의 오래된 추억하나를 소환해 주었습니다.
전방에서 군생활한 분들은 모두 겨울의 추위와 쌓인 눈을 치우는 것 등의 추억이 있을 줄 압니다.
1980년대 서해 최북단 섬에서 군생활을 했던 저도 마찬가지로 쏟아지는 눈, 극심한 추위 등을 경험했습니다. 병력이 많지 않아 휴가도 일년에 한번 가는데 기수별로 휴가 날짜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날짜가 밀리면 안되기 때문에 혹 날씨로 인해 휴가자를 태우고 갈 배가 섬에 들어오지 못해서 휴가를 나갈 수 없더라도 정해진 날짜부터 그냥 휴가가 시작됩니다. 특히 겨울에는 휴가자를 싣고 가야하는 군함이 잘 오지 못해 그 때 휴가가 정해진 기수들은 혹한에 그대로 밤 근무를 서고 그대로 일상을 지내면서 휴가날짜를 지워야하는 고통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당시 바닷가에 있는 작은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하는 후임(후배)이 한 명 있었는데 얼마나 추위를 타는지 도대체 옷을 몇개 입었는지 모를 정도 였습니다. 대충, 겨울 내의를 입고, 체육복을 입고 그 위에 군복을 입고 따뜻한 내피를 두 개쯤 더 입고 그 위에 방한복으로 지급되는 두툼한 것을 입으니 정말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모습으로 꽁꽁 싸매고 다녔습니다.
겨울 밤 근무를 실내 내무반에서 서는 것이 아니라 절벽 중간으로 뚫린 동굴 앞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겨울 바람을 맞고 서야 했기에 그렇게 해도 추위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 후임의 휴가가 겨울이었는데 그 해도 바람이 심해서 휴가날은 되었지만 배가 들어오지 못해 그냥 꽁꽁 싸맨채 근무를 섰고 그렇게 휴가가 며칠 지나버렸습니다. 너무 힘들었겠죠. 그런데 며칠 지나, 그 후임이 밤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내무반으로 들어서는 데 '배가 왔으니 휴가자들은 속히 본부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때 보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후임은 꽁꽁 싸매고 있던 옷을 다 훌훌 벗고 차가운 물로 씻고 겨우 휴가 정복하나에 내피도 없는 휴가용 야전 점퍼하나를 입고 마치 전혀 춥지 않은 듯 집결 장소로 떠났습니다.
기쁜 소식이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현장을 목격한 셈입니다. 그 내무반에서 함께 지내던 몇명의 선임들이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12월은 주님께서 오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습니다. 우리를 죄로 부터 구원하시고 구원을 너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인도해 가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기쁜 소식은 '배가 왔으니 집결하라'는 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세상의 여러 추위로 인해 자신을 꽁꽁 싸매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버려도 결코 춥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 선교사님들이 사역하는 모든 현장에서 이 기쁜 소식이 그 곳에 울려 퍼지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들어 오셨다. 속히 모여라"라는 그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길 함께 기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24년 12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