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이번 주가 명절이었습니다. 타국에서 설을 맞으신 모든 선생님들께도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꺼내 봅니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였습니다. 신학을 마치면 바로 선교사로 나갈 예정이라 부모님께 작은 가게라도 차려드리고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앞에 마침 매물로 나온 양품점(여성 옷가게)을 인수하여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작은 가게 안에 합판 하나 만큼의 방을 들이고 네 살 된 큰 아이와 함께 세 명이 생활을 했습니다. 합판 방에 아이를 재우고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내와 함께 남대문 새벽 시장을 다녔습니다. 밤에 새벽시장에 가서는 때로 졸려서 아내 혼자 장을 보라하고 차 안에서 자기도 했으니 온 가족을 고생시킨 셈입니다.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파는 것에는 은사가 없었던 아내가 억지로 가게를 맡았으니 가족 모두가 고생한 끝에 일년을 꼬박 채우고 접었습니다. 얻은 교훈은 '부모님 노후는 신경끄고 너나 잘해라' 정도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 보다도 더 젊으셨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생각됩니다. 저와 방법은 달라도 고국을 떠난 여러 선생님들의 심정이 대개 비슷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님이 연로하신 분들은 늘 숙제처럼 남아 있을 것이고 이렇게 명절이 되면 더 송구한 마음이리라 짐작해 봅니다.
결혼 1년 전에 장모님 소천하시고,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때 장인 어른 소천하시고, 후에 싱가폴에서 사역할 때 아버님이 소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 어머님만 생존해 계십니다. 수년 전 저희 가정이 국내 사역으로 들어 온 후에 일년에 절반 정도는 어머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6개월은 춘천에서 목회하는 형님네와 함께 사시고 나머지 6개월은 서울에서 저희와 함께 사시는데 그 동안 서울과 춘천에서 노치원이라 불리는 주간보호센타에 다니며 잘 생활하셨습니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잘 넘기시고 나름 즐겁게 생활하시던 어머니가 작년부터 많이 약해지셨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야 한다는 것을 어머니와 저희 자녀들이 함께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경험한 분들에 의하면 이 과정이 쉽지 않은데 저희는 비교적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다.
이틀 전에 구경삼아 요양원 한 곳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아직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여러 필요한 절차들이 남아 있지만 그 절차 중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가장 큰 절차라고 생각 됩니다. 기운이 많이 떨어진 어머니의 멍한 눈과 마주칠 때마다 울컥 울컥합니다.
선생님들 모두 명절에 타국에 있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분들은 마음이 더 좋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관련된 일로 고국에 들어와야 할 상황이 발생해도 후원자들에게 미안해 하며 조용히 들어 오거나 방문할 다른 이유를 만들어 겨우 들어왔다 가는 선생님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본의 아니게 불효자, 불효녀가 된 세계 곳곳의 선생님들께, 그리고 몸은 점점 쇠약해지나 사역하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깊어지는 모든 부모님들께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 2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