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잘 지내셨나요? 삼일만세운동의 정신이 세상 곳곳에 필요한 시절같습니다. 저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조금 떨어진 리무루라는 곳에 출장을 와 있습니다.
오는 시간이 꽤 길어 책 읽을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그 중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의 생애를 다룬 '난주'라는 소설이 인상 깊었습니다. 소설이긴 하지만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풀렸습니다. 난주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다만 양반에서 관의 노비가 된 난주처럼 이전 삶을 묻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직장 다니다 이민가서 공원의 주말 벼룩시장에 양말 좌판을 펼쳐야 했던 대학선배.
1등 신랑감 소리를 듣다가 이민가서 하루도 쉬지 않고 세탁소 문을 열고 있는 교회 선배.
벼룩 시장을 찾았던 사람들, 그리고 세탁소를 이용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제 선배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를 알리 없습니다.
한국에 와 허름한 곳에 살고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아프간 사람들을 비롯한 이주민들.
그들이 본국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우리는 헤아려 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지만 일의 종류와 관계없이 새로운 사회의 주변인이자 소수인이 되어 움츠려 든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케냐에 와서 이 곳 사람들을 보니 오래전에 알았던 노래 하나가 떠오릅니다.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큰 피그미'.
지금은 주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송승근 씨가 영국 유학 중에 길에서 만난 아프리카 출신의 왜소한 사람을 보며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노래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다소 위축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주민이 원래 멋진 사람이었음을 상상하며 만든 노래입니다.
그 작은 흑인이 한 때 들판에서 사자와 마주했던 용감했던 사람이라고... 가사가 이렇습니다.
이 지구 반대편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던 작고 검은 나는
난생 처음 보는 철로 된 새를 타고
회색 빛 숲 한복판에 떨어졌네
머리 하나씩은 더 큰 길거리의 사람들 속에
내가 찾아왔던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 들판을 달리고 사자와 마주섰던
내 모습을 기억해
아직 내 가슴속에 살아있는 신의 가호가
날 지켜주기에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작은 마을이
무엇보다도 아름다웠음을
지금에야 나는 깨달아 버린 거야
이젠 정말 혼자가 돼버렸지만
겉모습만을 보고 비웃는 그들은 몰라
내 안에 어떤 세상이 잠들어있는지
저 들판을 달리고 사자와 마주섰던
내 모습을 기억해
이제 시작일 뿐이야 내가 써내려 갈
나만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큰 피그미 난
세상에서 가장 큰 피그미 난
세상에서 가장 큰 피그미 난
비행기를 '철로 된 새'라고 표현했는데 여기 와 보니 스와힐리어로 비행기를 '유럽 새' - ndege(새) ulaya(유럽) -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모든 사람이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고 한발 더 나아가 마치 종으로 팔린 요셉처럼 '미래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나가려 택하신 주인공'임을 인식한다면 우리 가까이에 온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단체이든 국가이든 사람을 존중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왜 그와 정반대되는 사람들이 리더가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결론을 얻게 됩니다.
리더들이 위에서 어리석은 짓을 해도 그나마 세상이 아직 돌아가고 있는 이유는 리더들 때문이 아니라 세상 구석 구석에서 그렇게 사람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사회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
마찬가지로 우리가 속한 기관이 계속 나아가는 것도 곳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여러 사역자들의 헌신에 의해 그런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사랑하는 선생님들은 계신 그 곳에서 리더이기 보다 그곳을 받치고 계시는 아름다운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그 자리에서 기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23:10-11). 샬롬.
2025년 3월 1일
권성찬 드림
추신: 이은미 씨가 리메이크해서 알려졌지만 원곡인 더리딩클럽의 뮤비를 올립니다.